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지만 바람만큼은 놀랄 정도로 매서운데 오늘 같은 날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청국장인데 청국장은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 중 하나다. 멀리서부터 진한 향이 퍼지면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지만, 제대로 끓인 청국장의 국물을 한 숟갈 떠 넣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다. 콩이 오랜 시간 발효되어 만들어내는 구수함은 단순한 국물이 아니라, 속을 달래고 기분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발효의 지혜 청국장의 유래
청국장은 한국 전통 발효 음식 중 하나로, 예로부터 농한기에 손쉽게 끓여 먹을 수 있는 따뜻한 국이었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콩을 발효시켜 먹는 습관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청국장이라는 형태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겨울철 따뜻한 방구석에 짚에 싸놓은 콩에서 시작된 그 자연스러운 발효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 할머니 댁에 가면 작은 방에 메주가 있었는데 고약한 냄새가 나서 코를 막고 나왔던 추억이 있다. 삶은 콩을 덜 식은 상태로 보온이 잘 되는 공간에 두면 발효가 일어나고 이때 생기는 독특한 점액과 향이 청국장의 상징이다. 끓이면 끓일수록 깊어지는 그 국물은, 마치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입안 가득 퍼진다. 발효 과정을 통해 콩 속 단백질은 흡수율 높은 아미노산으로 바뀌고, 몸에 이로운 균들도 풍부해진다.
냄새는 줄이고 맛은 살리는 요리법
청국장을 끓일 때는 육수를 어떻게 우렸느냐에 따라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멸치나 다시마를 베이스로 삼은 육수에 청국장을 넣으면, 발효 특유의 향이 부드러워지고 국물 맛이 훨씬 안정된다. 요즘은 코인 육수가 많이 나와서 간편하게 육수를 만들 수 있다. 이때 돼지고기나 바지락 같은 재료를 함께 넣으면 감칠맛이 배가되고 잡내는 줄어든다. 두부나 애호박, 무, 대파처럼 익숙한 채소들을 넣고 살짝 고춧가루를 곁들이면 얼큰하면서도 부드러운 국물이 완성된다. 청국장은 된장찌개와 달리 오래 끓이지 않아도 맛이 깊다. 오히려 너무 끓이면 풍미가 줄어들 수 있으니, 적당한 타이밍에 불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 청국장찌개는 생각보다 만들기 어렵지 않다. 기본 재료만 갖춰도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어서, 평범한 집밥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리다.
먼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미리 끓여 준비한다. 약 10분 정도면 충분하며, 깊은 감칠맛을 위해 표고버섯을 살짝 넣는 것도 좋다. 냄비에 돼지고기 다짐육을 넣고 다진 마늘과 국간장을 살짝 넣어 볶는다.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 채 썬 무와 양파, 애호박을 함께 넣고 중불에서 1~2분 정도 볶아준다. 이제 준비한 육수를 붓고 재료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10분 정도 끓인다. 이때 거품이 많이 올라오면 걷어내 주는 것이 깔끔한 국물을 만드는 비결이다. 국물이 충분히 우러났다면 청국장과 된장을 풀어 넣는다. 청국장은 발효된 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너무 오래 끓이지 않는 것이 좋다. 약한 불로 5분 정도만 더 끓이면 충분하다. 마무리로 두부와 대파를 넣고,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나 청양고추를 살짝 넣어 칼칼함을 더한다. 개인적인 팁이 있는데 마지막에 꿀을 조금 넣어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한소끔 더 끓인 후 불을 끄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청국장찌개가 완성된다. 밥 한 공기와 김치만 곁들여도 훌륭한 한상이 된다. 이처럼 청국장찌개는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깊고 편안한 맛으로 식탁을 채워준다. 몸이 피곤하거나 기운 없을 때, 한 그릇 끓여보면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청국장이 몸에 좋은 이유
청국장이 몸에 좋다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콩 자체가 가진 영양소도 뛰어나지만, 발효를 통해 생긴 유익균 덕분에 소화와 흡수력이 더욱 좋아진다. 청국장의 끈적한 점액에는 혈액순환을 돕고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성분이 들어 있어 심혈관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게다가 비타민 B군과 미네랄이 자연 상태로 보존되기 때문에 성장기 청소년은 물론,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어르신들에게도 잘 어울린다. 일반 된장보다 나트륨 함량이 낮아 저염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도 부담이 적다.
청국장은 특별한 날보다도 오히려 평범한 날에 더 어울린다. 흐린 날, 마음이 울적한 날, 입맛이 없는 날. 이런 날 밥상 한쪽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국장 한 그릇이 올라오면 절로 숟가락이 간다. 김치 몇 조각, 계란말이 하나만 곁들여도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또한, 청국장은 해장 음식으로도 탁월한 편인데 속이 더부룩하거나 과음을 한 다음 날, 청국장의 따뜻한 국물이 위를 편안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든다. 수분과 단백질이 적절히 섞여 있어 자극 없이 몸을 회복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청국장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건 냄새다. 하지만 요즘은 냄새를 최소화한 청국장 제품도 많이 나와 있다. 발효 시간을 조절하거나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든 제품들은 특유의 향은 살리고 불쾌한 냄새는 줄여줘 입문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즉석 조리식품 형태로 출시된 제품들도 다양해서 혼자 사는 사람이나 요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간편하게 청국장을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청국장은 다시금 건강식으로서 재조명받고 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청국장
빠르고 화려한 음식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청국장은 정직하게 끓여낸 국물 한 그릇이 얼마나 깊은 만족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특별한 조리 기술 없이도, 손쉽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음식. 바로 그게 청국장이 가진 힘이다. 그동안 냄새만으로 거리를 두었다면, 이번엔 조금 다르게 바라봐도 좋겠다. 첫 숟갈을 입에 넣는 순간, 그 고소하고 짭조름한 국물이 전해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오늘 하루, 따뜻한 청국장 한 그릇으로 스스로에게 작은 쉼표를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